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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41    추천 0   덧글 0    / 2019.02.20 23:05:03

승훈은 담벼락과 잠시 눈싸움을 한다. 파란색 하늘이 그의 등을 비추고 있다. 승훈은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담벼락에 자신의 손을 얹는다. 잠시 심호흡을 쉬고, 그는 두 손으로 담벼락 위에 선다. 몸이 점차 땅에서 멀어지고, 그의 눈에서 세상은 위로 부유한다. 승훈은 힘을 준 상태로 한참을 힘쓴다. 그러나 그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털썩 다시 내려앉는다. 승훈은 이렇게라도 상쾌하고 푸른 하늘에 다가가고 싶다. 더 가까이, 더 오랫동안, 더 멀리로. 그러나 손에 힘이 풀리고 다시 내려와야 하는 순간은 기어코 오게 되어 있고, 제가 아무리 용을 쓴데도 그건 막을 수는 없다. 순간의 기쁨을 느끼면서, 일시적인 기분전환을 마친 뒤 그는 다시 두 발을 바닥에 두었다.

승훈은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서 뒤로 돌아본다. 수영이 그의 뒤에 서 있다. 두 손에 캔 사이다를 쥐고 있다. 수영은 승훈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익숙하게 승훈에게 사이다 한 캔을 건넨다. 사이다의 겉면에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새겨져 있다. 승훈은 캔을 따서 벌컥 사이다를 마신다. 음료는 목 안을 기포로 가득 채운 뒤 승훈의 빈속을 마구 헤집는다. 수영은 승훈이 섰던 담벼락에 걸터앉아서 탄산에 취해 있는 승훈을 무심히 쳐다본다.

오늘도 그거 하는 거야?”

수영의 말에 승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수영은 한심한 듯이 그에게서 눈길을 거두고는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본다. 승훈은 말없이 출입구의 문을 열고 옥상에서 나가려 한다. 그러나 수영이 그를 불러 세운다.

탈출 말인데.”

승훈은 멈칫 서서 짐짓 수영을 바라본다.

나는 역시 못하겠어. 미안해.”

수영은 그 말을 하고 나서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승훈은 멀어져가는 수영의 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나 잠시 뒤 다시 담에 거꾸로 올라선다. 발끝을 하늘에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뻗는다. 마침내 승훈은 땅을 떠받드는 기둥처럼 지면에 수직으로 선다. 그러나 머지않아 힘에 부쳐 팔은 부들거렸고, 승훈은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다. 승훈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담벼락에 걸터앉는다. 승훈은 해가 져서 별이 뜰 때까지 그 짓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탈출.’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염원하는 것이다. 새가 새장을 벗어나듯이, 사자가 우리에서 도망가듯이, 사람들은 자신을 얽어매는 구속에서 탈출하기를 바란다. 이에 관해서는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한 연구 팀은 피실험자에게 1000만원을 주고 1달간 홀로 한 평 반의 방 안에 갇혀 살게 했다. 이 방에는 빛도, 공기도, 소리도 통하지 않았고, 삼시세끼만이 천장에 달린 문으로 전달되었다. 피실험자는 방에서 나가고 싶다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었지만, 그 경우에는 보상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대부분은 사나흘을 버티지 못하였고 꽤 끈기 있는 사람도 2주일을 버티지 못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돈보다 자유를 택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실험에 조금의 변화가 추가될 때, 사람들의 행동이 극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앞선 실험 결과에 고무된 연구자들은, 다음 실험에서 방 안에 두 개의 문을 설치했다. 그리고 피실험자들에게 두 개의 문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두 개 중 하나는 뒤가 막힌 문, 나머지 하나는 출구와 연결된 통로와 연결된 문이었다. 뒤가 막힌 문이 열리는 순간, 출구는 꽁꽁 잠겨버리며, 피실험자들은 한 달간 꼼짝없이 그 방에 갇혀 있어야 한다. 물론 어떤 문을 열든지 보상금 1000만원은 날리게 된다. 간단한 규칙이 추가된 두 번째 실험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을 열지 않고 한 달을 버텼다.

 

하얀색 목련꽃이 무성하게 핀 4월의 교정이었다. 맑고 맑은 향기를 고이 접어 하늘로 띠워 올리는 목련꽃은 마치 뽀얀 구름을 흩뿌려 놓은 것 같아서 아름다웠다. 은은한 봄빛을 받는 학교는 아지랑이에 일렁여 마치 파스텔로 그린 그림 같이 보였다. 승훈은 목련의 향기를 맡을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낀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항상 봄이 오면 피는 목련이 반가웠다. 마치 목련이 승훈의 봄을 가져오는 것처럼 말이다. 목련이 피지 않으면 승훈은 등하굣길 돌담길에 개나리가 고개를 내밀어도, 공원에 심어진 벚꽃이 머리 위에서 살랑여도, 진짜 봄이 왔음을 실감하지 못했다.

4월이 되면, 거리의 목련꽃들이 하나 둘 꽃망울 속에서 슬쩍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 우리가 그 아래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 목련꽃은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조심히, 그리고 조금씩 답답한 집에서 몸을 빼낸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볼 때 즈음이면 이미 목련꽃은 자신을 감싸고 있던 껍데기에서 벗어나 있다. 승훈은 목련꽃들의 탈출기를 오랫동안 관찰해왔고, 그러는 사이에 자신의 탈출도 꿈꾸게 되었다. 승훈은 탈출이 하고 싶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로부터 탈출할 것인가? 아무도 그를 얽어매지 않았다. 승훈은 그저 그가 살고 싶은 대로 살 뿐이다. 누가 시켜서 학교에, 학원에, 피시방에 가는 게 아니다. 그 스스로가 결정한 대로 그는 움직인다. 그는 이미 자유롭다. 그래도 승훈은 탈출하고 싶었다.

그 날도 승훈은 활짝 핀 꽃들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뜬구름 같은 희망을 새겨 넣고 있었다. 그는 학교, 학원, 피시방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불운한 일상에서 탈출하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그래서 그 날 승훈은 사기그릇처럼 반질반질한 일상에 조그만 금을 내기로 한다. 지금까지 지켜온 규칙을 하나 깨뜨리기로 결심했다. 아침조회가 열리는 830분까지 학교에 들어가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승훈은 목련꽃에 뒤덮인 학교가 저 멀리 보이자, 등교하는 학생들의 무리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학생들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승훈은 간담이 서늘해 졌지만, 차츰 그 불쾌한 감정은 해방으로부터 오는 흥분으로 변화한다. 학생들이 등 뒤로 멀어지자 승훈은 더 빨리 걷기 시작한다. 더 이상 교복 입은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빠르게 뛴다. 그는 주변의 허름한 상가에 들어가서 교복을 벗고 가방에 든 일상복으로 갈아입는다. 환복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온 승훈은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작년에 명예퇴직한 승훈의 아버지가 집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수도 없이 들락날락거린 게임방, 피시방은 더 이상 가고 싶지 않다. 승훈은 그렇다면 어디에 갈 수 있을지 생각한다. 곰곰이 생각해도 하루 동안 머물만한 공간이 있지 않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승훈은 하루 종일 동네 구석진 곳을 쏘아 다니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30분도 지나지 않아 승훈은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게 된다. 호기롭게 길을 나서긴 했지만, 도대체 어딜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서질 않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일상에서 벗어낫다는 사실만으로 흥분했었던 그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돌아봐도 자신이 서 있는 이곳이 여태껏 수 백 번을 오고간 등하굣길과 피차일반 다를 바 없다는 사실에 실망한다. 머리를 흔들어 재끼던 흥분이 가라앉아야, 사람이 이성적이고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법이다. 승훈은 슬슬 뒷감당이 걱정된다. 선생님의 꾸지람이며, 반 친구들의 관심이며, 아버지의 엄한 훈계가 두렵다. 그런 생각이 번쩍 들자 승훈은 가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기 시작한다. 승훈은 그러는 와중에도 점점 마음이 다급해져 마치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듯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승훈은 30분간 걸어온 거리를 단숨에 뛰어왔다. 숨을 몰아쉬며 그는 시계를 본다. 830분이었다. 교문은 굳게 잠겨 있지만 아직 수업은 시작하지 않았다. 그는 가방을 교문 너머로 던지고 몸을 띄워 올려 문 위에 척 걸터앉는다. 그 때였다.

잠깐만!”

그는 교문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틀어서 바라보니 이 학교 교복을 입은 한 여학생이 이쪽으로 숨 가쁘게 뛰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흰 목련꽃이 핀 등굣길에 발자국을 찍을 때마다 양쪽으로 땋은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찰랑였다. 승훈은 엉거주춤 다시 교문 밖으로 내려갔다. 수연이 길고 긴 시간을 뚫고 승훈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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